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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서 폭포 나온것 봤는데 그것만 봐두 제주도는 너무 아름다운 섬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 없는 자연.. ^^ 퐈이팅!!
Posted by 심리다독

요즘 계속해서 생각나는 주제는 '젊음', '청춘'입니다.
저는 물론 20대 중반으로 '청춘'이라 일컬어지는 '젊은이'이지요.
그렇지만 지금 저의 나이에서 바라보고 느껴지는 젊음의 의미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픔이 가득하고 고통이 가득하고 또한 그와 비슷한 크기의 기쁨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읽을거리들과 볼거리들을 접하며 '젊음'에 대해 고민중입니다. 그 중 첫번째로 우선 최근 힘겹게 정독한 신경숙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느낀점을 남겨봅니다. 계속해서 찾아낼 것이 많은 주제인 듯 합니다.

감상문

신경숙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이미지 출처: 네이버포토갤러리



회색빛 도시, 옥탑방, 새벽의 길.

소설을 읽은 후 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들이다. 분명 청춘을 노래했는데, 마음이 맑지가 않다. 먹먹하기도 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말처럼 '새벽'의 스산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가가 새벽에 써서 그런 느낌이 더욱 잘 표현된 것도 같다.

토해내듯 삼키듯. 소설 속 청춘들의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나 또한 치열하게 따라가면서 여러 부분에서 힘겹기도 했다. 네 명의 주인공과 그들과 연결된 사람들 사이의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야기했던 어두운 시대상황. 이 모든 것들이 얽히면서 읽는 가슴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울렸다.

20대의 청춘. 지금의 내가 읽기에 좋았던, 때론 공감하고 때론 꽤나 신선했던 인물들의 감정의 고저의 급격함이 좋았다. 나또한 소설 속 그들과 똑같이 겪고 있는 현재의 불안한 심리상태, 감수성, 비관주의가 내게 없었더라면 이 소설은 나에게 그리 와 닿지 못했을 것이다.

흘러가 버리는 청춘의 시간은 물과 같다.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도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한 번 그 순간을 놓치면 똑같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가장 두려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청춘의 시기를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소설은 얘기한다. 역설적이게도 ‘상실’을. 누군가는 이미 자신이 상실한 그것을 가진 그들을 보며 상실감에 빠질지라도,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그것을 가진 그들은 오히려 그 상실을 피부 깊숙이 아프게 느끼고 산다. 지금이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청춘들. 그들의 끓어오르는 마음은 어느 한순간 쉽게도 하찮은 것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다. 그 끊어질 듯한 슬픔과 고통의 회색빛 밤이 지나면서 점점 인정하는 법을 배워간다. '상실'을 인정하는 법을..

아름답기에 아픈 청춘. ‘상실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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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심리다독

하울의 움직이는 성(Howl's Moving Castle) - ハウルの動く城


 
두 번째 성장, 주체적 선택과 책임에 관하여




황무지 마녀의 마법에 걸리기 전 소피의 모습은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소극적이고 무감각하며 그녀의 인생은 단조롭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자가게를 혼자 운영하는 그녀는 화려하고 젊은 자신의 어머니보다도 더 나이 든 마음으로 삶을 대한다. 그 모습은 그녀의 동생인 레티와도 대조된다. 밝고 쾌활하며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레티와 다르게 소피는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미녀들의 심장만 탐한다는하울의 등장에도 여느 소녀들처럼 소란스럽지 않다. 자신과는 무관한 세상일에 무심한 그녀에게서 열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그녀와 하울의 만남은 서로간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순간이었다. 겉은 젊지만 마음은 90대 노인과도 같았던 그녀는 자신의 마음 그대로의 얼굴을 갖게 되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 무뎌진 마음 때문인지 그다지 크게 놀라지도 않는 소피는 그간 자신의 발을 묶어놓고 있던 모자 가게를 떠나 마법을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하울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안에 청소부로 속이고 들어가게 된 소피는 몸은 불편했으나 자신의 속마음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할머니가 되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배워나가게 된다. 더러운 하울의 성을 청소하고, 전쟁과의 쓸쓸한 싸움으로 녹초가 된 하울의 여린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며 그를 격려하기도 한다. 젊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보다 더욱 씩씩해져가는 소피는 그 안에 열정이 타오를 때마다 점차 어려진다. 특히나 자신의 감정을 숨김 없이 쏟아내며 엉엉 우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90세 노인이 저런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성을 움직이게 하는 단 하나의 힘은 바로 약하디 약한 불이다. 이 불의 존재는 하울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소피에게 있어서도 매우 상징적이며 중요하다. 불은 마음과도 같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질 수 있으며 작은 나무에도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다. 그만큼 다루기도 어렵지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은 바로 불이다.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듯 소피의 마음에 사랑과 열정이 들어앉으면서 그녀의 몸은 활기를 찾고 진정한 젊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 속 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젊음이었다. 황무지의 마녀도 그렇고 하울 마저도 젊음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는 소피라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젊음과 활기찬 삶은 바로 마음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달려있음을 이야기 한다. 하울을 사랑하게 되면서도 스스로를 책망하는 순간 소피는 다시 90세의 노인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들을 이겨내는 것은 바로 소피의 하울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의 감정이 어느 정도의 깊이이냐는 문제를 떠나 그녀는 사랑에 눈이 먼 젊음 그대로 전쟁이라는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던져 하울을 구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다. 처음 보여주었던 소피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낡고 거대하기만 한 하울의 성을 허무는 선택을 했던 소피는 다시 결정을 내린다. 하울의 문으로 들어가기로.. 그리고 그 안에서 어릴적 하울이 자신의 마음을 팔고 얻은 ’, 즉 그 자신을 상징하는 움직이는 성을 얻은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그 마음을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앞서 소피는 물론이고 하울에게도 소피와의 만남이 그들 각각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을 싫어하며 스스로의 성에 갖혀 지내기만 했던 하울에게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새로운 열정과 스승에 대항해 싸울 용기를 소피를 통해 얻어나갔던 것이다. 그에게도 싸울 이유가 생긴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지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치히로와 하쿠가 철부지 어린아이에서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단계로의 성장을 그렸다면, 이 영화에서의 소피는 그 것을 넘어 스스로 선택한 삶에서 또 다시 주변과 화합하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경험하는 성장을 그린 듯 하다.






아름다운 색감과 분홍빛 국기, 형광색의 다양한 배경으로 기억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이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영화 속 배경 그 자체가 가지는 특성을 잘 살려주는 색감으로 이미지화 된다. 센과 치히로에서는 강렬한 빨강을 중심으로 원색의 강한 동양적 미가 보여졌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한번 물이 빠진 듯한 유럽의 유유자적하고 부드러운 색깔을 보여줌과 함께 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전쟁의 무서움을 여전히 드러냄으로서 대조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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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심리다독